백두대간 2-21차 산행기 ; 육십령 - 중재
일시; 2014년 10월 12일
날씨; 아침에 맑았다가 차츰 구름많이 낌
일본쪽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바람 많이 붐
대간산행코스; 육십령 - 구시봉 - 민령 - 북바위 - 977봉 - 덕운봉 갈림길 - 영취산 - 선바위고개 - 백운산 - 중고개재 - 중재
이번 산행은 덕유산과 지리산의 중간지점으로서, 백운산(1278.6m)이 최고봉이다.
산행시작 지점인 육십령의 해발 고도가 704m이고, 첫번째 봉우리인 깃대봉(구시봉)이 1014.8m 이니까, 대략 310m 정도만 끌어올리면 되므로,큰 부담이 없다. 구시봉 이후 줄곧 해발고도 900~1000m 정도의 높이로서 높낮이 변화폭이 심하지 않다. 덕분에 평소보다는 조금 빠른 템포로 산행할 수 있었다.
대체로 이번 대간구간은 전북과 경남의 도 경계를 이루고 있다. 대간의 동쪽은 경남 함양군 서상면, 서하면, 백전면 일대이고, 대간의 서쪽은 전북 장수군 장계면, 번암면 일대이다. 대간의 서쪽 전북 장수에는 논개의 생가가 있고, 대간의 우측 함양에는 논개의 묘가 있다.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은 금방이라도 손에 잡힐 듯 가깝게 느껴졌다. 태풍의 간접영향으로 바람이 많이 불어 미세먼지가 없어져, 지난번 구간때(여원재-새맥이재)보다도 오히려 더 지리산이 가까이 다가왔다.
<<대간서 나고 대간에 묻힌 논개>>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 마을에서 태어났다. 논개가 13세가 되던 해 부친 주달문이 세상을 떠나자 주색잡기에 빠져있던 숙부 주달무는 당시 장수 토호 김풍헌에게 논개를 민며느리로 팔았다. 그러나 논개 모녀가 완강히 반대하자 주달무는 논개 모녀를 상대로 장수 현감에게 소장(訴狀)을 올렸으나 오갈 곳 없게 된 모녀는 현감 부인의 병수발을 하면서 머물렀다. 이후 현감 부인은 세상을 뜨고, 결국 이게 인연이 되어 최경회와 논개는 부부의 연을 맺었다.
몇 년이 지나 임진왜란이 일어나고 경상우병사(慶尙右兵使)가 된 최경회는 진주성으로 들어갔다. 그러나 이후 일어난 진주성 싸움에서 성이 함락당하자 최경회는 남강물에 뛰어들어 자결하였다.
이에 논개는 승전 축하잔치를 연 왜군들 틈으로 기생으로 변장하고 들어가 왜장 게다니무라 로쿠스케(毛谷村六助)를 껴안고 10여일간 내린 장마비가 넘실대는 진주 남강에 몸을 던졌다.
현재 최경회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 리쯤 떨어진 함양 서상면 금당리 방지 마을 뒷산에 있는데, 이들 부부의 묘가 여기에 있게 된 사연은 이렇다.
진주성이 함락당하자 장수 지역 의병들은 남강 하류를 수색해 창원 지수목에서 최경회, 그리고 왜장을 껴안은 채로 죽은 논개의 시신을 발견했다. 이들은 부부의 시신을 고향으로 옮겨 주씨 문중과 장사지낼 것을 상의했지만, 왜적의 보복이 두려운 주씨 문중은 이를 거절했다. 또 기생이기 때문에 거절했다는 말도 있다. 결국 이들은 백두대간 동쪽의 삼남대로변 양지바른 언덕에 자리잡아 장사지내고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의병의 후손들에 의해 설화처럼 전해져 내려오던 이 묘는 20여년 전인 1975년 세상에 알려졌다. 순절한 후 382년만의 일이다. 현재 최경회, 논개의 묘는 함양군에 의해 성역화 작업이 한창이다.
백운산에서 본 지리산 파노라마
백운산에서 중재로 하산길에 본 지리산 파노라마
남덕유산과 기금거황(기백산,금원산,거망산,황석산) 파노라마
당겨서 본 지리산 천왕봉
백운산에서 바라본 지리산 천왕봉부터 반야봉까지의 주능선
청주에서 5시 넘어 출발하여, 휴게소 들르지 않고 차에서 아침식사를 간단히 하고 6시 40분경 육십령에 도착한다.
<<화적떼 피해 넘던 육십령>>
영남 선비들의 본 고장 함양과 전라도의 오지인 장수를 이어주는 고개는 백두대간의 덕유산 남쪽에 있는 육십령(六十嶺)이다. 육십령은 그 굽이만큼이나 수많은 사연들을 품고 있다.
이 고개 이름을 육십령이라 하는데는 여러 얘기가 전하는데, 첫번째는 안의 감영에서 이 고개까지가 육십 리이고, 장수 감영에서도 육십 리라고 해서 붙은 이름이라 한다. 두번째는 이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크고 작은 육십 개의 고개를 넘어야 겨우 닿을 수 있다고 해서 붙여졌다는 얘기도 있다.
가장 널리 알려진 세번째는 산적의 화를 피해 육십 명이 모였다는 얘기. 옛날에 육십령 고개에는 산적들이 많아서 함부로 넘나들지 못했는데, 고개를 넘기 위해서는 산 아래 주막에서 며칠씩 묵어가면서 육십 명의 장정들이 모일 때까지 기다렸다가 죽창과 몽둥이로 무장하고 떼를 지어 넘어야 했다는 것이다.
근처에는 당시 장정들이 모인 주막이 있던 곳이라는 장군동(壯群洞)이 있고, 산적들을 피해서 살다가 이룬 마을인 피적래(避賊來)란 마을이 지금도 남아 있다. 이런 곳이었기에 육십령에는 그 산굽이만큼이나 수많은 전설이 전한다.
육십령 주차장 한켠에는 팔각정자가 있고,,
육십령 표지석과 생태복원터널
육십령에서 영취산(무룡고개)방향으로 산행출발~ ;
계단을 올라가니 한무리의 대간종주팀이 서둘러 가고있다.
육십령에서 무령고개까진 11.5Km
조금 가다보니 깃대봉 2 Km 표지판이 보이고,
조금더 가니 깃대봉 샘터가 나온다
샘물은 콸콸 잘 나오고, 물맛은 괜찮은 편이다
깃대봉 샘터를 지나면 바로 깃대봉이 올려다 보이고..
깃대봉 가는길은 억새가 장관이다
구시봉(깃대봉;1014.8m); 전북 장수군 장계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
구시봉에 올라서니 남덕유가 눈앞에 성큼 다가온다
남덕유에서 진양기맥이 시작되어 남령으로 내려 앉았다가, 칼날봉(수리덤)을 일어켜 세우고, 월봉산, 금원산으로...
대전-통영간 고속도로는 서상일대를 황석산과 괘관산(대봉산)사이로 지나고..
가야할 대간길이 시원하게 펼쳐져 있다; 영취산에서 백운산으로..
영취산에서 무룡고개를 거쳐 장안산으로 호남정맥은 시작되고..
덕운봉, 백운산, 영취산, 장안산과 억새
조금 당겨보니 가야할 977봉과, 대간에서 살짝 벗어나 있는 덕운봉 능선이 눈에 들어온다
육십령에서 1시간 반 조금 안되어 민령에 도착한다; 민령에서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로 내려가는 임도가 나 있고, 민령 아래로는 대전-통영간 고속도로의 육십령 터널이 통과한다
민령에서 본 기금거황
민령지나 낙엽송지대가 대간의 서쪽으로 펼쳐져 있고, 바람이 없는 곳을 찾아 간식 섭취겸 잠깐 휴식을 취한다
민령에서 1.4Km 지나온 지점; 북바위가 대간길 바로옆에 있다
북바위; 신라와 백제간 전투시 사방이 잘 보여 북을 쳐 서로간 신호를 주고받았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북바위에서 바라본 남덕유산
북바위에서 내려다 보이는 대곡호; 대곡호에서 남쪽으로 조금 내려가면 의암 주논개 생가가 있다
10월 12일이라 아직 이르지만 1000고지인지라 단풍이 들기 시작한다
덕운봉 갈림길 가긴전; 구름이 점점 끼기 시작한다 ; 괘관산(대봉산)에 구름이 잠시 쉬어가는 모습이 들어온다
덕운봉 갈림길 가기전 육십령과 영취산의 중간지점
덕운봉 갈림길 가는 길은 조릿대가 무성하다
덕운봉 갈림길 가기전 잠시 조망이 트이는 곳; 남덕유로부터 기금거황까지 한눈에 들어오고, 오늘 지나온 대간길도 그 마루름을 적나라하게 드러낸다
기금거황 마루금
덕운봉 갈림길
덕운봉 갈림길에서 본 덕운봉
가야할 영취산과 백운산이 한결 가까이 다가온다
영취산과 덕운봉-제산봉 사이에 형성된 부전계곡
여전히 괘관산엔 쉬어가는 구름이 머룰고 있다
덕운봉 갈림길에서 600m 지나오면 논개생가로 내려가는 갈림길이 나온다; 지리적으로 논개 생가는 대곡호에 가까이 있어, 북바위쪽에서 내려가면 더 가깝다.
덕운봉 갈림길에서 약 30분 오니 영취산에 도착한다; 영취산의 뜻은 산세가 신령스럽고 빼어나다는 뜻으로, 금남호남정맥의 출발점이자, 금강,섬진강,낙동강의 분수령이다
산에서 보는 오미자즙의 빛깔이 예술이다
영취산에서 조금만 내려서면 선바위고개에 도달하고, 영취산이나 여기서 무령고개로 하산할 수 있다
선바위 고개에서 10여분을 더가니 전망좋은곳 표지판이 나와 가봤더니
백운산이 바로 눈앞에 보인다
백운산과 영취산의 중간지점을 지나고..
거기서 10여분을 더가니 다시 전망이 터진다
; 멀리 남덕유가 보이고
기금거황
건너편엔 장안산이 떡하니 버티고 서 있다 ; 특유의 평탄한 정상부 능선을 볼 수 있다
암릎으로 된 봉우리 두어개를 지나니 백운산이다
정상에 있는 작은 표지석
정상 옆 헬기장에 있는 표지석 - 백운산(1278.6m); 섬진강, 낙동강의 분수령으로 전국의 여러 백운산 중 가장 높다; 지리산과 남덕유산의 훌륭한 조망대다
북쪽으로는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지리산, 동쪽으로는 괘관산, 서쪽으로는 장안산이 막힘 없이 조망된다
특히 지리산 조망은 가히 압권이다
남쪽으로는 지리산 주능선이 장쾌하게 보이고..
동쪽으로는 괘관산
북쪽으로는 남덕유산
당겨본 남덕유
서쪽으로는 장안산이 막힘없이 조망된다
동북쪽으로는 기금거황
다시봐도 지리산 조망은 지루하지 않고, 황홀하다
당겨본 지리산 천왕봉
당겨본 반야봉
봐도 봐도 지루하지가 않다
당겨본 천왕봉에서 제석복, 장터목까지 눈앞에 선하게 보인다
원없이 지리산 조망을 하고, 백운산 헬기장에서 편하게 점심식사을 하구선 다시 한번 지리산을 바라보고, 아쉬움을 남긴 채, 중재를 향하여 편하게 내려간다
내려가다보니, 다시 조망이 트이는 곳에서 지리산을 바라보니, 오늘 마음이 너무나 뿌듯하다
이렇게 가까이 다가온 지리산을 본적이 없기에, 다시한번 발길을 멈추고....
대간의 서쪽으로는 지지계곡과 멀리 동화로도 보인다
중앙에 특이하게 뾰족한 속금산도 보이고, 그 좌측으로 봉화산, 우측 뒤로는 고남산까지 조망을 하니, 오늘 더이상 여한이 없다
장안산 정상 편평부가 다시한번 보이고..
남덕유가 자기도 봐 달라며 멀리서 남성스러움을 뽐내고 있다
당겨보니 서봉,남덕유산,무룡산,백암봉,중봉,향적봉까지....
중고개재 가기전 조망터에서 본 지리산
파노라마
장안산
중고개재 표지판; 글씨가 모두 지워졌다--중재는 여기서부터 작은 봉우리를 5-6개 넘어야 한다
중고개재 근처의 멋진 나무 한그루
중재; 오늘 산행의 종착지
중기마을 쪽 하산길; 우리가 갈 길이다.
선두조가 먼저 도착하여 잠시 쉬고 있으니, 비가 부슬부슬 내리기 시작한다.
벤치에 누워 비를 맞으며 하늘을 보니, 잠시 졸음이 밀려온다. 나른함을 잠시 즐긴다..
이번 산행은 지리산 조망 하나만으로 더이상 바랄게 없는 산행이었다..
((인물사진 첨부합니다))
멋진 대간산행은 주~욱 이어집니다..
모두들 수고 많으셨습니다..
다음 산행은 11월 4째주 성삼재-여원재 구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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