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두대간 2-20차 산행기 ; 여원재 - 새맥이재
일시; 2014.9.28
날씨 ; 오전에 화창, 점점 연무 낌, 28도 이상으로 약간 습하고 더운날씨.
여정;
--갈때;청주-청원IC-경부고속-호남고속-익산장수고속-전주광양고속-오수IC-24번 국도-여원재
--올때;지리산IC-88고속-대전통영고속-경부고속-청원IC-청주
산행 코스; 여원재(07;29)-고남산(09;25)-통안재(10;00)-매요휴게소(11;24)-유치삼거리(13;33)-사치재914;30)-693봉(15;25)-새맥이재(15;44)
오늘 걷는 백두대간의 동쪽 운봉 고원지대는 영호남을 잇는 교통의 요지요 삼국시대에는 대간을 경계로 백제와 신라가 서로 영토 다툼이 심했던 역사적인 장소. 또 동편제의 고향이고 판소리 흥보가의 배경이 된 곳이다.
여원재(480m) - 운봉읍과 이백면을 잇는 고개로 일명 연재라고도 한다. 고개 서편에 고원평야를 이룬
곳이 운봉읍이며 섬진강의 상류가 되고 이 지류가 남원시가지를 거쳐 광양만으로 빠진다.
고려말 침입한 왜구를 무찌르기 위해 이 재에 도착했을 때 꿈에 백발의 여인이 나타나 고남산 삼신단에 올라 3일간 기도하고
출전하라고 알려주어 왜장 아지발도를 죽이고 대승을 거두었다고 한다. 이성계가 그 노파를 기리기 위해사당을 짓고 '여원'이라
불렀는데 그때부터 여원치(女院峙)라고 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동학란 때도 관군과 농민군의 전투가 치열했던 곳이다.
풍수설에 의하면 매요마을은 말의 허리 형국이라 합니다.
그래서 옛날에는 이 마을 이름을 말마(馬), 허리요(腰)를 써서 '마요리'라 불렀다고 한다.
그러나 임진왜란 때 유정대사(사명당)가 산천을 유람하며 마요리에 머무를 때
지금의 마을 이름으로 바꿔놓았다는 애기가 전해진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사람들이 매화같이 순결하고 선량해서 눈속에서도 꽃이
시들지 않고 순결한 향기가 난다는 의미로서 마요리를 매요리(梅要里)로 고쳤다고 한다.
지리산 북쪽 운봉고원에 자리잡고 있는 평온하고 조용한 동네이다.
황산(697.2m) 아래에 있는 운봉읍 화수리 비전 마을은 고려 말 이성계의 황산대첩의 배경마을로도 유명하지만 국악인들에게도 판소리의 성지와 같은 곳이다.
섬진강을 사이에 두고 나누어지는 동편재와 서편재, 그 중에 운봉은 동편재의 뿌리다.
동편재의 창시자로서 판소리계에서 최고의 칭호인 “가왕(歌王)”으로 불리는 “송 홍록”(1780년경~ 1863년경)명창이 이 비전마을에서 태어났으며 그의 “귀곡성”은 듣는 이로 하여금 등골이 오싹하게 하였다고 한다.
또한 국창 “박 초월"(1916·1983)이 태어난 곳이 바로 이곳인 까닭이다.
최근 남원시에서는 황산대첩비 옆 비전 마을에 이들의 생가를 복원했다.
여원재; 24번국도(남원시 이백면과 운봉읍 사이 고갯길)
좌측에 벅수 석상이 있는 곳이 성삼재 방면이고, 우리는 우측 고남산 방면으로...
여원재 고남산 방면 들머리 입구
여원재에 얽힌 전설; 이성계의 황산대첩
"고려 말 왜구의 노략질이 끊임없이 행해지고 있을 때, 고갯마루 주막에 살던 젊고 아리따운 주모에 얽힌 슬픈 전설은 지나가는 대간꾼들의 마음을 숙연하게 한다.
고개를 넘나드는 길손들에게 밥과 술을 파는 신세였지만 “어찌 내가 왜구에게 몸을 빼앗기라”하며 왜놈이 만진 왼쪽 젖가슴을 스스로 오려내고 자결했다고 한다. 왜구의 노략질과 약탈이 극심했던 1380년 우왕6년 양광(경기, 충청),전라. 경상 삼도 순찰사로 임명된 이성계가 남원에서 배극렴과 합류 왜구 토벌에 나선다.
팔랑치를 넘어온 불사신으로 소문난 왜장 아지발도를 상대하기 위해 여원재를 넘을 적에, 백발의 여인이 나타나 “내 원수를 같아~~~ 주~~”하며 이렇게 저렇게 ~~~ 전략을 가르쳐 준다. 이성계가 깜작 놀라 눈을 뜨니 꿈이었다. 그 전략이 무엇이었을까?
아지발도는 나이가 어렸지만 키가 7척에 힘이 장사라 온몸을 무거운 무쇠갑옷으로 두른 탓에 불사신과 같았다.
그를 죽이려면 화살을 이용해 얼굴의 급소를 쏘는 것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이름도 그의 본 이름이 아니다. 그에 대한 두려움이 소문에 소문을 더하면서 만들어졌다는 설이다.
‘아지’는 어린아이를 이르는 말이고, ‘발도’는 용맹하다는 뜻을 지닌 몽고말이라고 한다.
황산에 당도한 이성계는 꿈속에서 백발여인으로부터 어떤 계시를 받았을까?
날이 저물고 그믐밤인데다 피아의 분별이 어려워 싸움을 할 수가 없다. 바로 그것이었다.
당연히 아지발도도 방심하고 있었을 것이다.
잠시 망설이던 이성계는 더 이상 시간을 지체할 수없는지라 하늘을 향하여‘천지신명이시어~~~ 이 나라 백성을 굽어 살피시어 달을 뜨게 해주소서’ 라고 간절히 기도를 올린다.
그런데 하늘과 땅이 감동했는지 기적이 일어났다.
갑자기 칠흑 같은 밤하늘에 어디서 솟았는지 보름달이 휘영청 떠올라 대낮같이 비추어 주었기 때문이다.
깜작 놀라는 적장 아지발도의 얼굴이 달빛에 훤히 빛났다. 이때를 놓치지 않고 부원수 통두란으로 하여금 먼저 아지발도의 투구를 쏘게 했다.
그 화살이 어김없이 투구를 날리자 아지발도는 벗겨지는 투구의 끈을 입으로 잡으려고 얼른 입을 벌리고 말았다.
그 순간을 놓칠세라 신궁 이성계의 화살이 이번에 아지발도의 입속으로 들어가 목구멍을 관통한다.
국토를 유린하고 백성들을 도륙하던 왜구의 적장이 죽는 순간이다.
결국 아군보다 왜구의 수가 10배가 많았지만 모두 섬멸되었고 아지발도가 흘린 핏자국이 지금도 황산 광천에 있는 피 바위에 남아 있으며 이것이 그 유명한 황산대첩인 것이다.
이 때 이성계 장군이 달을 끌어 올렸다하여 인월(引月)이라는 지명이 생겨났다고 한다.
꿈에 나타난 백발의 여인이 주모인지는 모를 일이지만, 그 후 태조 이성계는 고갯마루에 ‘여원’이란 사당을 짓고 그 여인의 넋을 달랬고, 후세 사람이 이 고개를 ‘여원치’라고 불렸으며, 주민들은 흥부에게 박씨를 물어다준 제비가 넘나들던 고개라 하며 '연재'라고도 부른다."
들머리를 들어서면 소나무숲을 지나, 바로 마을이 나오고, 저기 앞에 고남산이 보인다.
마을어귀에서 좌측 마을뒷산으로 들어서는 들머리가 여럿 있어 약간 헷갈릴 수 있겠다
들녘의 벼는 익어가고..
여원재에서 고남산까진 5.4Km; 동네뒷산을 타고 고도를 조금씩 올리기 때문에 힘들지 않다
아침해가 바래봉, 덕두산위로 떠 올랐다; 지리산 서북능선의 마루금이 적나라하게 나타난다
편안한 소나무숲길을 따라 걸으면...
대간의 남서쪽방면은 아직 운해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저멀리 희미하게 구름바다위로 무등산이 섬처럼 떠 있다.
그렇게 편안한 동네뒷산을 오르다가 암릉을 밧줄로 오르고, 목조계단을 2개 오르면 곧 고남산 정상이다
계단 상부에 오르면 전망이 꽤 괜찮은편인데..
고남산 북서쪽으로 천황산이 특징적으로 보이고
남서쪽으론 멀리 운해너머로 무등산이 두둥실 떠 있다
여원재에서 시작한 대간길 마루금이 드러나고..
고남산 정상 표지판; 제대로 된 표지석은 아랫쪽에 따로 있는데, 그 이유가 뭘까?
혹시 헬기로 정상표지석을 아래쪽에다 잘못내려놓고 옮기기가 힘들어서 그대로 두었을까?
정상에서 가야할 대간방향에 통신중계시설이 있고.
고남산의 북서쪽으로 천황산, 상서산이 보이고 우측으로 매봉재와 그사이 멀리 희미하게 팔공산이 보인다
고남산과의 사이로 남원으로 흘러가는 요천(요천은 오수천과 만나고, 다시 보성강과 만나 섬진강을 이룬다)이 흐르고, 요천옆으로 88고속도로가 놓여있다
고남산에서 바라본 북쪽 조망-호남정맥의 산들이 장안산부터 팔공산까지 보이고, 특이하게 뾰족산 속금산이 뾰족하게 랜드마크로 잘 보이고, 우측으로 백운산이 보인다
고남산 정상에서 남동쪽을 바라보면 지리산 서북능선이 병풍처럼 보이고, 운봉고원지대가 펼쳐져 보인다
만복대부터 바래봉, 덕두산까지 지리산의 서북능선이 병풍같이 펼쳐져 있고, 그너머로 반야봉이 보인다
서북능선 앞으론 운봉고원지대가 펼쳐져 있고, 그 뒤론 삼한시대의 한 국가였던 마한의 왕조가 백제의 침공을 피해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달궁이 있다.
백두대간을 경계로 좌측동쪽은 안개가 완전히 걷혔고, 우측서쪽은 아직 운해가 남아있는 모습이다
고남산에서 바라본 북쪽조망 파노라마
고남산 정상에서 지리산 서북능선, 만복대에서 수정봉을 이어 고남산까지 이어지는 백두대간길, 그리고 북서쪽과 북쪽으로 천황봉,팔공산, 장안산, 백운산 등을 조망하고, 동쪽으로는 황산, 삼봉산등을 조망하고, 준비해온 훈제닭고기에 막걸리 한잔하고 통안재로 하산한다
고남산 정상 표지석; 정상에서 약간 내려와서 위치해 있다
고남산 정상 표지석을 지나면 헬기장이 나오고, 통신시설이 있다
무슨열매인지??
통안재에 다다르니 임도가 나오고.
대간 진행방향 우측으로 불당지가 보이며..
불당지너머로 지나온 고남산 정상의 통신시설이 보인다
매요마을 가기전 좌측으로 새로 공사중인 88올림픽 고속도로가 보이고..
산행시작 2시간 50분 정도 경과해서 매요마을에 도착한다
멀리 특징적으로 생긴 황산이 보인다
이런 마을길이 백두대간길이다
전봇대에 리본표시기가 달려있어 표시기를 보면서 진행하면 어렵지않게 매요마을을 통과할 수 있다
아직은 바쁘지않은 정미소옆을 지나고..
전봇대에 누군가가 귀엽게 대간길임을 표시해 두었다
처음 대간산행에 참가하신 고원장님; 활기찬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이렇게 매요마을길을 누비며 가다보면 정면에 빨간지붕의 교회건물이 보이고, 교회 직전에 매요휴게소가 위치해 있다
매요휴게소 직전에 있는 매요마을 회관과 경로당
유명한 매요휴게실; 다행히 주인장할머니께서 자리해 계셔서 점심식사도 하고, 지리산막걸리도 한잔 하면서 푹 쉬었다 가기로 한다
막걸리와 함께 내어주신 묵은지김치맛이 아주 일품이다
오늘은 반찬은 적게 준비해가고, 어묵탕을 끓여 막걸리와 함께 맛있게 점심식사를 하고..
시간이 여유가 있어, 옆에 있는 평상에 누워 낮잠도 잠시 자면서 충분히 휴식을 취한다
매요휴게소를 지나면 바로 이렇게 많은 리본 표시기가 달려있고,,
마을 뒷길로 가다보면
아주 큰 밤나무가 교회건물 바로앞에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폐교된 운성초등학교건물을 지나
아스팔트길이 잠시 나오고, 조금가다보면 좌측으로
리본표시기가 달려있어 여기로 들어서면 되겠다
유치삼거리;표지판을 눈에 잘 띄는 도로변에 새워두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을 해본다. 백두대간 복원(사치재)공사로 기존등산로를 통제하고, 사치삼거리로 우회하라고 친절히 쓰여있는데, 그걸 제대로 못보고, 우리는 기존 등산로로 향하는 바람에 좀처럼 경험하기 힘든 일도 경험해 보고..ㅋㅋ
유치삼거리에서 사치재로 가다보면 너덜지대가 짧게 나오고, 무덤1기를 지나며,,
다 쓰러져가는 사치재 표지판이 나오고..
사치재 백두대간 복원공사 현장이 나온다
지나온 고남산도 잘 보이고,,
여기까진 좋았는데,,
사치삼거리로 우회를 했어야 하는데, 사치재 백두대간 복원공사로 88고속도로 밑으로 나 있던 굴다리가 폐쇄되어 버린것을 모르고 여기로 온 것이다.
공사장 인부에게 물어보니, 그냥 고속도로를 가로지르라신다.........
하는 수 없이 우리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고속도로를 횡단한 것이다..ㅠㅠ
고속도로를 건너오니 들머리 산행표시기가 보이고..
무덤 1기가 있어 여기서 잠시 쉬어가기로 한다. 놀랜 가슴 쓸어내리고...
이젠 산행의 후반부다. 사치재에서 2.4 Km 만 가면 새맥이재다
사치재에서 새맥이재전 693봉으로 가는길은 약간 급경사 오르막길이다
오르다보니, 우측으로 지리산휴게소가 눈에 들어온다
사치재에서 약 10분을 오르면 헬기장이 나오고, 여기서 전망이 다시 터진다
헬기장에서 북쪽을 바라보니 가야할 693봉이 보이고, 그 바로뒤가 새맥이재가 되겠고, 그너머로 대간에서 살짝 벗어나있는 시리봉이 눈에 들어온다(편안한 대간산행때는 유독 알바를 하는 것 같다. 693봉 바로 너머 새맥이재에서 우측아곡리로 1분만 내려가면 산행끝인데, 왜그랬는지 모르겠지만, 우리는 새맥이재를 지나 시리봉가까이 갔다 다시 새맥이재로 되돌아오게 된다ㅠㅠ)
지나온 고남산도 벌써 멀리 보이고..
덕두산, 바래봉이 남동쪽으로 눈에 들어온다
고남산과 멀리 희미하게 뾰족한 천황산이 눈에 다시 들어온다
도토리
헬기장을 지나 693봉 가기전 뒤돌아본 고남산
새맥이재; 표지판이 없다
지난번 중재-새맥이재 구간때 왔던 곳인데, 대간의 서쪽 논곡리쪽으로 하산하는 길에는 나무덤불을 쌓아놓아 길을 폐쇄시켜놓았다.
분명 지난번 논곡리로 하산할때 봤던 느낌의 길이 아니어서, 여기가 새맥이재가 아닌가 싶어 더 진행을 해 본다.
하지만 결국 다시 되돌아왔다
아마도 운동량이 부족해서 그러지않았나 싶기도 하고....
어쨌던 여원재-새맥이재 구간도 이렇게 마무리한다.
이제 지리산-속리산 구간중, 지리산종주와 성삼재-여원재, 육십령-중재만 남았다.
다음달엔 육십령-중재를 하고, 11월엔 성삼재-여원재를 하기로 하고 산행을 마무리한다..
산행후 차량회수하러 택시타고 가면서 본 황산의 모습
운봉읍 바래산 자락 아래 특이하게 숲으로 이루어진 지대가 보인다
이성계 장군의 황산대첩과 연관된 유적이 있다고 한다
황산자락(운봉읍 화수리 비전마을)에 조성된 국악(동편제)과 관련된 시설
택시타고 오면서 바라본 수정봉의 모습
인월의 유명한 지리산 흑돼지구이
<백두대간 여원재-새맥이재 구간 인물사진 첨부합니다>
모두 수고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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